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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으로 배우다가, 몸으로 만난 몰입
    카테고리 없음 2026. 5. 14. 10:47

    — 황농문 교수 몰입아카데미 1Day 클래스 후기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읽고 슬로싱킹이라는 개념에 마음이 끌린 지 꽤 됐다. 평소 폴리베이걸(다미주신경) 이론과 소마틱 워크를 공부하면서 "사고의 깊이는 자율신경 상태가 결정한다"는 가설을 들고 다녔고, 슬로싱킹은 그 가설과 정확히 맞물리는 실천법처럼 보였다. 다만 한 가지 의심이 있었다. 책으로 이해한 것과 그것을 몸이 익히는 것 사이엔 얼마나 큰 격차가 있을까. 5월 9일,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서 그 격차를 직접 확인했다.

    1. 강의에서 새롭게 정리된 것 — 창의성은 "최전선"이 아니라 "내 지식의 가장자리"에서도 가능하다

    다섯 개 강의 중 가장 와닿았던 건 5단계 "창의성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어떻게 발달시킬 것인가?"였다.

    직접 강연을 해주신 황농문 교수님은 인간의 지식을 세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인류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영역", 그 경계선인 "지식의 최전선", 그리고 인류가 이미 알고 있는 "알려진 지식의 영역". 흔히 창의성이란 그 최전선을 한 발짝 넘어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 — 인류가 아직 모르는 것을 새로 발견하는 일 — 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최전선에 서 있는 극소수 연구자만의 영역이 된다.

    그런데 강의의 핵심은 그 다음에 나왔다. 알려진 지식이라 해도, 그것을 배우지 않고 스스로의 머리로 풀어내려 하면 그것은 곧 자기 지적 한계에 도전하는 행위이고, 효과적으로는 지식의 최전선에서 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각 개인에게는 "나의 지식의 영역"이 있고, 그 가장자리를 자기 머리로 밀어내는 일을 할 때 일어나는 뇌의 활동은 인류의 최전선에 도전하는 학자의 뇌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황농문 교수님은 이 지점에서 뉴턴의 일화를 인용했다. 뉴턴에게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은 "내내 그 생각만 했으니까"였다. 황 교수님은 이 짧은 답을 다음과 같이 다시 풀었다. 뉴턴은 그 생각을 하는 동안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태가 계속 지속되었다는 뜻이다. 답이 안 나오는 시간, 그 자체가 창의성이 잉태되는 과정이다.

    이 한 줄이 강의 전체에서 가장 묵직했다. 평소 우리는 "답이 안 나오는 시간"을 비효율, 막힘, 무능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답이 안 나오면 검색하고, AI에게 묻고, 다른 일로 도망간다. 그런데 황 교수님의 말대로라면 그 도망의 순간이 바로 창의성이 자라날 자리를 닫아버리는 순간이다. 창의성은 막힌 상태에서 시작되고 막힌 상태에서 자라난다. 막힘을 끝내는 가장 빠른 방법(검색, AI 질의)이 동시에 창의성을 죽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이 메시지가 와닿았던 이유는 창의성을 "재능"이나 "타고난 감각"의 영역으로 막연히 생각하던 통념과 정면으로 부딪혔기 때문이다. 창의적 결과물은 영감의 순간이 아니라 답을 찾지 못한 채 충분히 오래 한 문제에 머문 사람의 뇌에서 나온다.

    4단계 "AI 자동화 시대" 강의와 묶어서 들으니 결론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AI는 "알려진 지식의 영역"을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가져다주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자의 "나의 지식의 영역"은 늘어나지 않는다. 답이 안 나오는 시간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건, 다시 말해 창의성이 잉태될 시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줄어든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AI 시대에 인간이 잃기 가장 쉬운 게 정확히 이 능력이라는 점, 그래서 슬로싱킹이 시대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 강의 후반부에서 분명해졌다.

    2. 슬로싱킹 실습 — 몸이 먼저 알아차린 변화

    강의가 좋은 지도를 그려주었다면, 실습은 그 지도를 실제로 걸어보는 시간이었다.

    다섯 번의 실습은 모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치·사명·비전·목표·전체의 다른 각도로 묻는 구조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결정적 통찰은 그 프레임 자체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빠르게 답하려 들면, 오히려 평소의 머리 회전이 정리된 답을 즉시 만들어버린다. 그건 슬로싱킹이 아니라 평소 사고 패턴의 가속이다.

    실습이 깊어진 건 프레임을 잠시 잊고 그저 그 자세, 그 호흡, 그 의자 위에서 시간이 흐르게 두었을 때였다.

    의자에 처음 앉았을 때는 자세를 정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했다. 평소 책상 앞에 앉으면 자동으로 들어가는 약간의 긴장 — 어깨가 살짝 올라가고 턱이 앞으로 나오는 자세 — 이 몰입 의자에서는 갈 곳을 잃는다. 처음 한 5분 동안은 호흡이 가슴 위쪽에 머물러 있다는 걸 자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의식적으로 깊게 들이마시려 하지 않았는데 숨이 저절로 아랫배까지 내려갔다. 그 직후 어깨가 의자 등받이 쪽으로 한 단계 더 떨어져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 흥미로웠다. 평소 한 주제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결론을 빨리 만들자"는 방향으로 자동으로 가속한다. 그런데 호흡이 내려간 상태에서는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이 결론 쪽으로 달리지 않았다. 한 가지 답이 떠오르면 그것을 옆에 두고 다른 각도가 떠올랐고, 그 두 가지가 충돌하면 또 다른 시각이 부드럽게 따라왔다. 평소처럼 "맞는 답을 골라야 한다"는 압박이 느슨해진 자리에, 평소엔 떠오르지도 않던 종류의 연상이 올라왔다.

    이 부분에서 평소 추상적으로만 이해해 왔던 한 가지가 몸으로 확인됐다. "공부할 때 머리가 아프면 뇌를 잘못 쓰는 것"이라는 황 교수님의 말씀은, 자율신경이 충분히 안정된 상태에서만 깊은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른 언어로 표현한 것이었다. 폴리베이걸 이론에서 말하는 ventral vagal 상태 — 미주신경 톤이 올라간 안전 신호의 상태 — 에서만 사고는 강박과 분리되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책에서는 별개의 두 영역으로 알고 있던 신체 이완과 깊은 사고가, 몰입 의자 위에서 같은 현상의 두 면이라는 게 흐릿하게 드러났다.

    3. 책으로 안 것 vs 몸으로 안 것

    『몰입』을 읽고 나는 슬로싱킹을 "이완 상태에서 한 문제에 오래 머무는 사고법"이라고 정의로 받아들였다. 그 정의는 정확하지만 불충분했다. 책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있었다.

    이완에 들어가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생각보다 길었다). 잡념이 올라올 때 그것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그저 두고 다시 돌아오는 감각. 한 시간을 한 문제에 머문다는 게 시계로는 한 시간이지만 체감으로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 미세한 결들은 텍스트로 전해지지 않는다. 황농문 교수님이 책을 여러 권 쓰고도 굳이 직강과 실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전거를 글로 배우는 것의 한계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다.

    4. 앞으로의 실천 계획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두 가지 구체적인 결정만 했다.

    첫째, 첫 슬로싱킹 주제는 방송대 기말고사 대비로 잡았다. 학습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마감이 있고, 결과가 나오는 영역에서 먼저 슬로싱킹을 적용해 보려 한다. 시험 공부라는 가장 친숙한 맥락에서 "답을 빨리 찾지 않는 사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둘째, 기말고사가 끝나면 본격적인 슬로싱킹 훈련 주제로 고등학교 수학을 시작한다. 알라딘에서 문제집을 중고책으로 이미 사두었다.

    이 두 번째 결정에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수학을 싫어했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답이 안 나오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땐 그 막힘이 곧 나의 부족함의 증거라고 느꼈고, 그래서 빨리 답지를 펴거나 포기했다.

    그런데 강의에서 황농문 교수님이 뉴턴의 일화를 풀이하며 "답이 안 나오는 그 시간 자체가 창의성이 잉태되는 과정"이라고 말했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떠올랐다. 그 시절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했던 막힘의 시간이, 실은 가장 가치 있는 사고의 자리였다는 것. 시험도 점수도 없는 지금, 답지를 덮고 한 문제 앞에 천천히 머무는 연습을 다시 해보고 싶다. 수학을 좋아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답이 안 나오는 시간을 견디는 감각만큼은 충분히 익혀볼 수 있을 것이다.

    환경 조건은 미리 정해둔다. 시간은 오전, 집에서 외부 자극이 가장 적은 시간대로. 스마트폰은 방해 금지 모드에 두고 진입한다. 몰입 의자까지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평소 책상 의자에서 몸의 긴장이 풀리는 자세를 먼저 만든 후에 시작한다는 작은 의식 하나를 넣기로 했다. 1Day 클래스에서 가장 확실히 배운 건 일정 자체보다 환경의 통제력이 몰입의 진입 장벽을 결정한다는 점이었다. 강연장의 의자, 디지털 디톡스, 정적이 그토록 정교하게 통제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예상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 마감이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한 문제에 머무는 일이 외부 동기로 일할 때보다 훨씬 더 의식적인 환경 설계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이걸 알면서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은 다를 거라 믿는다.

    마무리

    10시간 동안 가장 자주 떠올랐던 건 "이건 한 번에 익혀지지 않겠다"는 감각이었다. 그게 오히려 안심이 됐다. 답이 안 나오는 시간을 견디는 일은 하루로 익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생 가져갈 사고법이라면,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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